사일로 현상과 연대의식

2023. 2. 9. 21:00Issues & Thoughts/Improvis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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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ly tribes held together by a group feeling can survive in a desert.”

- by Ibn Khaldun through Muqaddimah


1. 시중은행과 토스의 차이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다들 한 번 이상쯤은 국내 모바일 은행 앱들을 사용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사람들에게 사용하기 가장 편리했던 것이 어느 은행의 앱인가 묻는다면, 10명 중 8명 이상은 토스뱅크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토스뱅크의 앱과 다른 시중 은행들의 앱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선 가장 크게 눈에 들어오는 차이점은 앱을 열었을 때 보이는 첫 메인화면의 다름이다. 토스뱅크 앱의 첫인상은 깔끔하고 직관적이며 사용자 친화적이다. 유저가 알고 싶어하는 정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유저 입장에서 화면을 디자인했다. 반면 시중은행들의 앱은 유저에게 필요한 정보는 상단에 간략히 보여주고 그 외 생산자의 입장에서 알리고 싶은 내용으로 광고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토스뱅크가 구글이라면 시중은행들은 그 옛날 야후와 같은 인상을 준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분명히 소비자 입장에서는 토스뱅크의 UI/UX가 압도적으로 편리한 것을 시중은행들의 생산자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앱을 만들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기술적인 문제 때문일까?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이기심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서간 이기주의와 성과주의, 나아가 사일로 현상으로 인한 문제, 즉 정치적 문제 때문이다. 기업내 많은 이해관계자들은 본인들의 KPI를 높이기 위해 그들의 컨텐츠를 모바일 앱 메인화면에서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려한다.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앱을 사용하면서 그만큼 토스에 비해 덜 편리한 경험을 하게 된다.

 

반면 토스는 직원들이 "고객 중심 가치" 아래 똘똘 뭉쳐있다. 토스의 대표는 좋은 기업 문화를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아무리 말단 직원이라도 이견이 있다면 대표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토론을 할 수 있다. 오히려 그렇게 직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대표의 생각과 다르게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은 고객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며, 대표는 직원들이 자유롭게 표출하는 의견들이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지 철저히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2. 연대의식

흥미로운 점은 분명 시중은행들도 고객 중심을 가치로 표방하며 직원들에게 철저히 주입시키려 노력한다. 하지만 정작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순간, 대부분의 직원들은 고객보다 본인의 이익을 더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원인의 힌트를 이븐 할둔의 연대의식(Group Feeling) 이론에서 엿볼 수 있다. 그의 저서, 역사서설(The Muqaddimah)에 의하면, 연대의식은 문명, 국가 등의 탄생과 멸망에 영향을 주는, 사람들 사이를 이어주는 무언가다. 토스의 경우 고객 중심 가치라는 대의가 연대의식의 일부라 할 수 있겠다. 이는 마치 우리 신체의 텔로미어(telomere)와 같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말단 부분에 존재하는 타이머로서, 시간이 흐르며 무수한 세포 복제가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 서서히 길이가 축소된다. 결국 텔로미어가 모두 감소하게 되면 그 세포는 수명을 다한다. 세포에게 있어 타이머가 텔로미어였다면, 조직에게 있어 타이머는 연대의식이라 할 수 있다. 연대의식이 충만한 때 조직이 탄생하고, 조직이 성장하며 연대의식은 감소, 결국 연대의식이 희미해졌을 때 위기가 닥치면 조직은 해체된다.

 

역사서설에 의하면, 초창기 충만했던 연대의식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증거를 조직 구성원들이 각자의 이익을 우선시하게 되는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구성원들은 권력 유지를 위한 해자를 파고 조직 내 다른 구성원들과 차별화를 이루기 위해 이전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복잡한 의사결정 프로세스와 평가관리, 그리고 나아가 사치와 향락, 지금 당장 본인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의 맴버들 외 서로 다른 여러 사람들이 조직 내 구성원으로 유입될 것이다. 그러면서 이 현상은 더욱 가속화된다. 처음에는 댐에 작은 구멍을 통해 물이 유입되듯이, 그러나 점점 걷잡을 수 없게 구멍이 커져 결국 조직은 비대한 좀비처럼 삶을 연명하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이 지경이 되어도 조직 내에서 문제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 조직은 언젠가 내외부적으로 큰 위기가 닥치면 위기를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쓰러지게 된다. 현대 비즈니스적으로 다시 말하자면, 어떤 조직의 성과평가와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복잡해지고 사일로 현상이 두터워진다면 그 조직의 텔로미어인 연대의식이 흐려지고 있다고 간주할 수 있다. 또한 처음에는 눈치채기 힘들지만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연대의식이 이미 상당히 퇴색했음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3. 장수하는 조직

그렇다면 이것은 극복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경험하게 되는 숙명인 것일까. 그저 무기력하게 순응할 수 밖에 없는?

 

글쎄,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유기체는, 사람도, 기업도, 국가도 수명을 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장수하는 비결"은 존재한다고 믿는다.

 

로마의 경우, 서로마만 고려할 때 무려 1,200년간 지속됐고, 동로마 제국까지 포함시키면 그 역사가 2,200년이 넘는다.

이게 가능했던 한 가지 대표적인 이유로, 로마는 "위기"상황이 닥치면 "인재"를 찾아 연대의식을 재정비했기 때문이다.

 

현대 조직들 또한 마찬가지로 그들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위기는 언제나 닥친다. 특히 위기가 심각할수록 조직 내에서 숨어있던 인재들이 부상한다. 이들을 끌어올리고 지원해 위기를 극복해야한다.

 

평범한 시기에는 정말 필요한 인재와 있으나마나 한 사람간에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KPI가 탁월하고 개인성과가 아무리 뛰어나도 정말 그 사람이 우리 조직에 꼭 필요한 인재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런 사람이 연대의식을 흐리게 하는 주요 원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큰 위기가 닥치면 옥석이 가려지기 시작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기업의 최종 의사결정권자들에게는 아무리 위기가 닥쳐도 인재들이 보이지 않는다. 인재는 생각치도 못한 도처에 심어져 있으며 그 위 상사 혹은 부서 동료들이 연막처럼 최종 의사결정권자들의 시야를 흐리게 한다. 때문에 조직은 두 가지를 확실히 해야 한다.

1. 의사결정 프로세스를 극도로 단순화하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해야한다. 신입 인턴 사원이 최고경영자에게 직언하는게 자연스럽도록 문화를 조성하고 기회를 제공해야한다. 평상시에는 비효율적이고 보안상 문제도 유의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겠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인재를 찾을 수 있게 된다. 한편, 그 사람이 정말 인재인지 알 수 있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전사차원에서 비용을 들여서라도 구성원들이 그들의 아이디어를 빠르게 테스팅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

2. 인재를 발굴하게 되면 그 인재를 믿고 밀어줘야한다. 결정적인 의사결정권을 지닌 노련한 노장들은 가장 중요한 가치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약간의 가이드와 조언을 해주는 역할만 수행할 뿐, 그들의 의견이 간섭되기 시작하면 상황은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 인재들이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서포트하는 것은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마치 도덕경의 太上下知有之(태상하지유지), 즉, "최상의 통치자는 아랫사람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처럼, 조종간을 인재에게 맡겨야한다.

 

위 두 조건이 충족될 경우, 위기를 타개할 인재들이 부상하여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이렇게 얻어진 성공 경험을 통해 전 구성원들이 새롭게 연대의식을 재정비할 수 있게 된다.


4. 기대

토스가 언제까지 전직원이 똘똘 뭉쳐 고객 중심적 연대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른 수많은 기업들과 국가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토스도 언젠가는 구성원들이 공동체보다도 "사치와 각자의 이익"을 더 중요시하게 되고 허울뿐인 고객 중심을 표방하는 비대한 좀비처럼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 토스가 그러하듯 새로운 플레이어가 또 다시 등장해 바톤을 이어 받을 것이다. 심지어 어쩌면 현재 덩치 큰 트롤과 같은 시중은행이 혁신에 성공해, 전직원들이 연대의식으로 중무장하고 다시 한 번 날아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궁금하고, 두근두근 기대된다. 미래가.


더 자세히 알아보기

The Muqaddimah: An Introduction to History

토스 기업 문화 – 토스 팀의 핵심 가치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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